사실은
최소한 100일쯤 달려 본 후에, 혹은, 가능하다면 반 년이나 일 년쯤 꾸준히 달린 후에 기록을 정리해서 올리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되면 겨울에 여름의 러닝을 얘기하고, 비가 올 때 눈 오는 날의 러닝을 얘기하는 미스매치가 공감을 전혀 일으키지 못할 수 있긴 했지만, 아무튼 뭔가 작은 이정표라도 세운 후에 글을 쓰고 싶었다. 달리기를 말하는 자격 같은 것이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아직은 자격이 안 되는 것처럼 부끄럽기도 했다. 공식 대회에 한 번도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아니, 10킬로미터 완주도 못 해 본 사람이 무슨 달리기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말인가?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공개발행'하기로 작정하고 쓰고 있다.) 작품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그저 달리기가 포함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일 뿐이다. 누구도 달리기에 대해서 나에게서 정보를 얻거나 조언을 얻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책임을 애초부터 진 적이 없고, 무엇을 올리든 자유롭다. 갑작스럽게 달리기를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아, 달리는 건 진짜 재미 없어'라든가 '달리기, 그거 해 보니 별 거 아니더라구' 하면서 주제를 바꾸는 변덕을 부리더라도 말이다.

매일 달리기를 한다는 것 = 매일 꼼꼼하게 기록한다는 것
'매일 달리기를 한다는 것'과 '매일 어떤 것을 꼼꼼하게 기록한다는 것'은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좀 묘한 유사성이 느낌적인 느낌으로 다가온 건데, '매일'이라는 빈도 때문은 아니다. 내 몸을 대상으로 달리기라는 패턴, 리듬 같은 것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 다들 별 생각 없이 바라보고 별 생각 없이 사는 일상을 끝없이 다시 보고 끝없이 연상되는 의미들을 추적하여 기록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뭔가를 꾸준하게 정리해서 올려 보고, 그것의 주제가 처음엔 달리기일 수 있고, 설령 주제가 달라지더라도 쓰고 올리는 행위를 계속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그러니 달리기가 어느 정도 '완성'된 다음을 기약하며 끄적여 놓다가, 결국 100일도 못 채우고 끝나는 경우, 나는 달리기와 포스팅 둘 다를 놓쳐서 아무런 배움도 남는 것도 없이 허탈해질 수 있는데, 그럴 필요 있을까? 싶다는 것이다.
달리기 이전의, 식물같은 생활
처음부터 달리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나이탓인지 개인적인 특성 때문인지 무릎이 무척 아픈 상태였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정리하기로 하고, 아무튼 처음엔 걷기를 운동삼아 시작했었다. 페이서앱(Pacer)의 기록을 정리해 보았더니 7월 2일이 본격적으로 1만보 이상을 걷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긴 첫날이었다.


'걷는 것이 운동이 된다'는 건, 역설적으로 걷는 일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이 거의 없는 식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걷기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식단관리앱을 사용하면서 꽤 만족스럽게 살이 빠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돌이켜 보건대). 그렇게 걷기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달리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졌고, 캘린더에 급하게 적어 둔 짧은 기록을 보니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적혀 있다.
- 7월 18일 2.5킬로미터 조깅, 아침엔 3킬로미터 실내 러닝
- 7월 19일 저녁 2.6킬로미터
- 7월 23일 3킬로미터 5바퀴 우중 러닝
- 7월 25일 3킬로미터 러닝
첫날부터 '러너' 설레발
나는 러너니까
뭐든 용서할 수 있는 사이인 아내에게는 7월 18일, 처음으로 2.5킬로미터 러닝을 마친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이렇게 너스레를 떨 수 있었다 쳐도, 그 며칠 후부터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회사 직원들에게도 '나 요즘 뛰고 있어'라며 자랑질을 했다. (나, 그렇게, 가볍다, 몸만, 무겁다) 그러다가 러닝크루 활동을 하는 진짜 러너인 직원이 "NRC 안 쓰면 러너라고 할 수 없죠"라고 알려줘서 7월 29일, 나이키 런 클럽 앱을 깔고 첫 번째 공식기록을 작성했다.
그렇게 나의 러닝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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