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등산을 하지만 달리기는 두려워"
그 친구의 입에서 "달리기는 좀 두렵다"라는 말이 나왔을 때, 사실 좀 놀랐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유도를 꾸준히 했고, 축구를 비롯해서 모든 운동에 능했고, 키는 180센티미터를 넘고, 요즘은 매주 등산(높은 산은 아니고 트레킹 정도로 불러야 하겠지만)을 다닐 정도로 활동적인 스타일인데 ‘두렵다’고? 라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릎도 약하고, 뭐든 행동하기보다 걱정하고 눈치 보는 스타일이어서 나도 처음엔 러닝을 '두려운 것'으로 여겼기도 했고, ‘러닝에 대한 두려움’을 요새 또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주변이 온통 달리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달까?
"저렇게 달리면 되잖아"
무릎 부상으로 러닝 금지기간을 보내고 있는 나와 달리 아내는 그날도 열심히 공원을 달렸다. 달리기를 마친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면 들려 준 얘기.
공원 입구에서 부부가 한참을 티격태격하더란다. 뛰기 시작할 때도 거기 있더니 4킬로미터를 달리며 그 지점을 지날 때마다 여전히 거기 서서 티격태격하고 있더라고. 마지막 지나갈 때 들은 남자의 목소리. "저 사람처럼 뛰면 되잖아~"
10분 정도의 간격으로 들은 아주 짧은 토막의 대화 내용으로 유추해 봤을 때, 부부(혹은 커플)은 달리기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있었고, 여자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 주.목.을. 받.으.며. 달리는 걸 어떻게 하느냐?'는 입장, 남자는 '뭐가 그렇게 어렵냐? 저 사람(나의 아내)처럼 뛰면 되지 않느냐?'하는 입장. 안 그래도 매우 어렵게 마음을 먹고 러너의 일상을 시작한 우리들로서는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던 대화였다고 한다.
서둘러 그 부부의 대화에 끼어들자면, 공원을 달리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사실은 몇몇 빼고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느라, 자신의 걸음걸이를 신경 쓰느라, 자신의 개를 케어하느라, 동반자와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풍경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느라 남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별로 없다. 주목을 좀 받으면 어떠랴마는, 사실은 완벽한 복장과 완벽한 러닝화와 완벽한 자세로 뛰어야 한다는 강박은 네버! 신경쓸 것이 못 된다. 그냥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좋다.
달리기, 가장 단순하면서도 도전하기 힘든 운동
서베이를 해 본 것은 아니지만, 나와 아내 + 친구 + 공원입구의 부부 이렇게 N=5만 보더라도, 아, 직장에서 러닝크루 활동을 하는 직원의 팀장까지 합하면 N=6만 보더라도 러닝은 가장 단순하지만 쉽게 시도해보기 힘든 운동인 것 같다. 나만 해도 '러닝은 평생을 두고 내가 하지 않을 것 같은 운동'이 달리기였고,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봐도 이상하리만큼 어렵게 생각하는 운동이 러닝이었다.
왜 그럴까?
호흡법도 가르쳐주지 않고 '이 거리를 이 시간 내에 달려라'라고 다그치기만 해서, 결국 토할것 같은 상태로 끝났던 초중고 시절 달리기의 트라우마 때문에?
스트레칭을 거의 안 한 상태에서 보행 신호가 깜빡일 때 10미터쯤 달려보고는 좌절했던 경험 때문에?
어느새 불룩하게 나온 배와 약해진 관절 때문에?
주변을 둘러 봤을 때, 뛰는 사람들이 대부분 20대 같아서 지레 '내 나이가 이래서'하는 위화감 때문에?
이 몸매로, 이 자세로, 이 속도로 뛰었을 때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눈치 때문에?
......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달리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되레 안도가 된다. 안도가 되고, 두려움의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은, 세상의 모든 두려움이 그런 것처럼, 자의든 타이든 그 상황에 놓이거나 그걸 어쩌다 해버리게 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는가?
모두가 두려워 한다. 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기기만 하던 갓난아이가 서고, 최초의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은 지상 최고의 '두려움의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라. 걷는 것은 숨쉬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걷기를 거부하던 최초의 두려움은 이유를 알 수 없어지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잊으면 좋을 과거의 상태가 될 뿐이다.
뛰는 것은 단지 '걷기 다음의 단계'일 뿐이고, 당신이 어떤 연유로 두려움을 갖든 해보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어떤 못난 자세로 뛰든, 어떤 신발을 신고 뛰든 어느새 당신은 달리는 이 단순한 운동이 너무 즐거워져서 아침에도 뛰고 저녁에도 뛰고, 주말에 의례적인 약속 하나쯤은 스킵하고 조용히 뛰러 나가는 상태가 될 것이다.
인생에 한 번쯤은 러너가 되어 보라
당신이 아직 달리지 않는 이유.
그것은 러닝에 대해, 이유도 내력도 알 수 없는 어떤 두려움이나 부담감이나 업신여김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눈녹듯 사라질 성질의 것들이다.
당신이 아직 달리지 않는 이유.
그것은 러닝이 주는 즐거움과 다이어트 효과와 만족감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종합선물세트처럼 한꺼번에 당신을 찾아 올 것들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어도 한 번쯤 권하고 싶은 것 하나는, "인생에 한 번쯤은 러너가 달려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러너가 되어 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닝 다이어리] 비 오는 날의 러닝 (0) | 2023.09.26 |
---|---|
[러닝 다이어리] 하이힐 러닝 (0) | 2023.09.22 |
[러닝 다이어리] 고독한 러너와 마음속의 러닝크루 (0) | 2023.09.06 |
[러닝 다이어리] 28도 날씨에 뛰면 죽는 줄 알았다 (0) | 2023.09.05 |
[러닝 다이어리] 그렇게 나의 러닝은 시작되었다 (5) | 2023.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