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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러너가 되어 간다

[러닝 다이어리] 비 오는 날의 러닝

by WritingDUCK 2023. 9. 26.

태풍이 오던 날의 달리기

2023년 8월 16일. 태풍이 서울 서쪽 50킬로미터까지 접근한 날.
기온까지 22도로 뚝 떨어져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은 비의 양으로 보면 그리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비 오는 날의 러닝; 한가한 트랙. 비가 오락가락하던 중 오락하던 순간의 풍경.

 
비가 와도 뛰자

아침부터 이런 생각이긴 했지만 막상 저녁이 가까워 오자 슬슬 걱정이 되었다.
일단은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서 감기에 걸릴 것 같았고,
체온유지를 위해 '이런 날 러너가 입을 것 같은' 종류의 옷은 한 벌도 없었고,
'우산을 들고 뛰어도 되나?' 같은 자잘한 고민까지...
아무튼 비가 오는데 달리기를 해 본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섣불리 나서지지가 않았다. 
 

달리는 미친 놈

결론은?
그래도 나섰다.
초보자의 객기라고나 할까?
집도 가까우니 홀딱 젖어도 급방 수습할 수 있을 테고,
학창시절 추억 중 하나가 비 맞으면서 흙탕물 운동장에서 축구하던 거 아니었는가?
그 기분, 다시 내고도 싶었다.
 
공원은 한가했다.
여행지 외곽지역의, 투수객이 많지 않은 저렴한 호텔에 있는 피트니스룸 같은 느낌.
들고 뛰다가 자칫하면 부러질 지도 몰라서,
버려도 아쉽지 않은, 오래된 하트무늬 돌잔치 답례 우산을 들고 나갔다.

비 올 때의 러닝; 오래된 돌잔치 우산을 들고 공원에 나갔다.

 

우산을 들고 뛰어도 되나? 

애초의 이 어리석은 의문에 답을 준 것은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시던,
'내 마음 속의 러닝크루' 중 한 분인 60대 아주머니.
비가 내리면 우산을 펴고 달리셨고,
비가 잠깐 그치면 우산을 접어 들고 달리셨다.
(흠... 저러면 되는군.)
20명 안쪽의, '달리기에 미친' 사람들 중에 
아주머니가 끼어 있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할 때, 우린 우산을 접어 들고 비를 맞으며 달렸다.)

비 올 때의 러닝; 오른쪽에서 우산을 펴 들고 달리시는 분이 '내 마음 속의 러닝크루' 중 한 분인 60대 아주머니.

 

비 올 때 러닝이 제일 좋아

가을이 성큼 다가와 최저 기온이 10도대로 내려 간 지금에야 공감이 가지 않지만,
연일 30도를 넘었던 날씨가 갑자기 22도가 되어 버리자
비를 맞았다가는 반드시 감기에 걸릴 것 같았던 '추운' 그날...
그 즈음 뛰었던 날 중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았고
속도도 제법 났고, 너무 시원했다. 
(날이 좋으면 기록도 좋아지겠다는, 당연한 추론을 대단한 발견인 것처럼 하면서 뛰었다.)

비 오는 날의 러닝; 비 오면 다 젖을 각오를 해야 한다. 모자는 그저 시야확보를 위한 잠깐의 도움이 될 뿐.
비 오는 날의 러닝; 22도가 그 때는 너무 추웠다.
비 오는 날의 러닝; 옷이야 매일 빠는 거라 맑은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같은데, 운동화 말리는 게 큰 일.

 

하루라도 뛰지 않으면 발에 가시가 돋...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발에 피멍이 들고 인대가 늘어나고
양쪽 정강이뼈에 피로골절이 오도록 매일 뛰어야만 살 수 있었던 슬픈 남자의 이야기...
도 아니고, 아니었는데, 우린 그날 저녁에도 기어이 공원에 나서고야 말았다.
그렇게 달린 게 너무 좋았고, 
그래서 비 따위는 오히려 러너에게 환영할 만한 것이라 생각하게 됐는데
이제는 겨울을 뒤에 달고 오는 가을이라 다른 것들이 걱정이다. 
 
비가 아니라 
겨울과 추위, 눈에 대한 준비(혹은 경험)가 필요한 시기. 
같은 비라도 한 방울 한 방울이 얼음조각 같아질 시기... 
 
어떻게 준비할 지는 모르겠으나
달리기는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