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트랙만 달렸다
러닝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오직 공원의 612미터 트랙만 달렸다.
비가 오거나 공원에 나갈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 집안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트랙밖을 나서 본 적이 없다. 트랙 밖에서 뛴다는 게 매우 두려웠기 때문인데... 그런 게 뭐가 두렵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사실은, 뛰는 것 자체가 아직은 두렵다. 뛰는 것만도 아직은 심적인 부담이 있어서(이 부감감은 물론 애초에 신체적으로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트랙에 들어서기 전 주변 공원의 길을 두세 바퀴는 돌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야 트랙에 들어 설 정도였다.




트랙 바깥, 그러니까 공원에 난 여러 갈래의 길을 달려보자는 아내의 제안이 몇 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단칼에 거절하곤 했다.
싫어.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내가 늘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을 아는 아내는
괜찮아. 아무도 당신 안 봐. 신경 안 써.
라고 했지만 달리는 속도로 보나, 폼으로 보나 '일반인'들 사이에서 달리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우연히 들르거나 산책을 하거나 개를 운동시키거나 농구를 하기 전 또는 후거나 자전거를 타러 나왔거나 아니면 그저 우연히 공원에 들르게 돼서 구경삼아 둘러보고 있거나... 아무튼 트랙 밖에는 달리기와는 별로 상관 없는 사람들이 넘쳐 나고, 거긴 내가 그나마 '섞여 지낼 수 있는' 트랙 안의 세상과는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다.
트랙 안을 도는 사람들은
- 산책 삼아 느릿느릿 걷는 사람(이지만 트랙을 돌고 있어서 '나는 운동하고 있는 중이야'라고 자위하고 싶은 사람?)
- 열심히, 땀이 날 정도로 운동 되게 걷는 사람
- 러너들
로 나눌 수 있는데, 역시나 트랙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있고 자발적으로 그 곳에 들어온 이상 초보자가 됐건 거의 마라토너 수준의 러너가 됐건 서로를 이해해 줄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약간의 핑계가 생겨서 트랙 바깥을 달려 보게 되었다.
러닝 다이어리 2023.8.26 토요일 오전
- 처음으로 트랙을 벗어나 러닝.
- 3.01킬로미터
- 23분 16초
- 평균 페이스 7분 43초
순전히 태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처음으로 트랙이 아닌, 트랙 바깥에 난 길을 뛰었는데 햇볕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달리기가 점점 재미있어 지면서 휴일 오전 달리기를 시도했고, 지난주까지는 비가 와서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이 날은 그늘이 없는 트랙을 돌기가 무서웠다. 공원의 다른 길들은 나무 그들이 있어서 햇볕은 일부 구간만 노출되었지만 트랙은 전체적으로 그늘이 없었다. 자외선에 대한 두려움이 트랙 밖에 대한 두려움보다 컸다고나 할까?





허세만 키운 트랙 밖의 러닝
달려본 소감은... 괜찮았다.
완만한 경사도 있고, 짧지만 약간 더 가파른 경사 구간도 있었지만 크게 무리되지 않았고, 오히려 도전하는 느낌으로 달리기 좋았다. 오르막 구간이 있으니 내리막 구간도 있었는데, 심장이 차분해지면서 호흡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는 구간이 되었다. 내리막의 경우에 호흡은 부담이 덜하지만 무릎에는 무리가 간다. 나처럼 무릎이 약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오르막 구간이 훨씬 우호적으로 느껴진다.
달려본 소감은? 벌써 허세가 생겼다.
'다시 트랙을 돌면 훨씬 쉽게 뛸 수 있겠다' 라든지 '바깥에서 열심히 달려서 몸을 만들고 실력을 키운 다음 트랙 안의 사람들(내 마음 속 러닝크루들)을 놀래켜 줘야지' 라든지.
그렇게 허세 가득한 마음상태로 러닝을 마쳤다.
왠지... 달리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허세에 익숙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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